창밖의 하늘은 아직 겨울빛을 머금고 있습니다. 흐린 듯 투명한 회색빛 하늘 아래로, 바람이 가볍게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습니다. 분명 봄이 오고 있지만, 아직은 그 문턱에서 망설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.
따뜻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창가에 앉아 있으면, 이렇게 조용한 순간이 참 고맙게 느껴집니다. 바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이 여유가, 어쩌면 우리가 삶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작은 행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.
거리를 바라보니,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. 두꺼운 패딩 대신 가벼운 코트를 걸친 사람들, 손에 들린 따뜻한 커피 대신 아이스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. 그렇게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가오는 봄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.
그러고 보니, 겨울이 끝나갈 때쯤이면 늘 비슷한 기분이 듭니다.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 들면서도, 한편으로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 같아 머뭇거리게 되는. 마치 겨울과 봄 사이의 공기가 뒤섞여 있듯이, 마음도 그 경계에서 흔들리는 듯한 기분입니다.
하지만 결국 계절은 변하고, 우리는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겠지요. 그렇게 천천히, 하지만 확실하게.
어릴 적엔 겨울이 끝나는 것이 마냥 아쉬웠습니다. 눈이 녹아 버리는 것이 아쉬웠고, 더 이상 장갑 속에 손을 포개 쥘 일이 없다는 것이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.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,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. 추운 날들이 있었기에 따뜻한 햇살이 더 반갑고, 긴 겨울을 지나왔기에 새싹 하나에도 마음이 설레니까요.
그런 의미에서, 오늘 이 순간도 소중히 간직하고 싶습니다. 겨울과 봄이 맞닿아 있는 이 조용한 오후를, 아직은 차가운 바람과 그 안에 살짝 묻어 있는 봄의 기운을, 그리고 이 차 한 잔이 주는 따뜻함을.
언젠가 시간이 더 흐른 뒤, 오늘을 돌아보았을 때 이 순간이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. 꼭 특별한 일이 아니어도, 이렇게 조용히 계절을 느끼고, 마음을 정리하고, 따뜻한 차를 마시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기억이 될 테니까요.
봄이 오기 전에, 이렇게 잠시 머물러 있는 시간도 나쁘지 않습니다. 그리고 곧, 우리도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겠지요. 계절이 변하는 것처럼,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조금씩, 천천히.